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도 '21세기 대군부인'을 보면서 딱 그 순간이 왔습니다. 신하들이 외치는 '천세(千歲)' 소리를 들었을 때였습니다. 종영 후에도 역사 왜곡 논란이 가라앉지 않더니, 이번엔 대본집까지 내용이 수정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1.역사 왜곡 논란, 대체 뭐가 문제였나
'천세'란 글자 그대로 천 년을 산호(山呼)하는 의례 표현입니다. 여기서 산호란, 신하들이 군주를 향해 만수무강을 빌며 소리치는 전통 의식입니다. 그런데 조선은 중국 명·청의 제후국이었기 때문에, 신하들이 왕에게 올리는 예(禮)는 '천세'였고, '만세(萬歲)'는 황제에게만 허용된 표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조선 왕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면 이는 황제국을 자처한다는 의미가 되어, 실제 역사에서라면 외교적 사건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극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라 당연히 고증이 됐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드라마 속 신하들이 외치는 말이 '천세'였고, 이게 왜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오히려 "퓨전 사극인데 고증이 그렇게 중요하냐"라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역사적 배경을 활용하면서 그 위에 현대적 요소를 얹는 것과, 기본적인 역사 문법을 틀리는 것은 결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복식(服飾) 고증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한 '십이장복(十二章服)'과 '면류관(冕旒冠)' 역시 쟁점이 됐습니다. 십이장복이란 일월성신 등 열두 가지 문양을 새긴 최고 등급의 예복으로, 황제만이 착용할 수 있는 의례복입니다. 면류관 또한 황제의 관모에 해당합니다. 조선 시대 왕의 복식은 구장복(九章服)에 해당했고, 십이장복과 면류관은 황제국의 군주에게 해당하는 규격이었습니다. 이 부분도 역사적 위계 체계를 무시한 연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논란에서 제가 특히 주목한 것은, 단순히 드라마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대본집이라는 출판물로 남겨진다는 점입니다. 드라마는 방영이 끝나면 기억이 흐릿해질 수 있지만, 대본집은 기록으로 남습니다. 이 점에서 제작진의 초기 고증 검토 과정이 얼마나 부실했는지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2,대본집 수정, 어떻게 봐야 할까
드라마 종영 직후 출판사인 오팬하우스 스튜디오 오드리 측은 대본집 일부 표현을 정정한 PDF 파일을 배포했습니다. 수정된 내용에 따르면, 주인공의 착용 복장은 '십이장복'과 '면류관'으로 명시됐고, 신하들의 산호 역시 기존의 '천세'에서 '만세'로 정정됐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방영분에서 문제로 지적된 표현이 '천세'였는데, 대본집에서는 이것이 '만세'로 수정됐습니다. 즉 대본 원본에는 '만세'로 쓰여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실제 촬영·방영 과정에서 '천세'로 바뀐 것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쨌든 수정했으니 된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수정 자체가 잘못을 인정한 것이라면, 그 경위에 대한 설명이 함께 있었어야 했다는 겁니다. 어느 단계에서 오류가 생겼는지, 제작진은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를 독자나 시청자는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는 PDF 배포와 함께 실물 수정 스티커 신청도 받고 있습니다. 이미 대본집을 구매한 독자들을 위한 사후 조치인 셈입니다. 이런 대응이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애초에 왜 검토가 안 됐느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수정 대응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이번 경우는 종영 이후 빠르게 조치가 이뤄진 편이라는 점에서 절반의 평가는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논란이 드라마 제작 생태계에서 가지는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극의 역사 고증은 퓨전 장르라도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
- 대본집은 드라마의 공식 기록물로, 오류가 출판물로 확정되는 문제가 있다
- 제작·방영·출판 각 단계에서 교차 검토 체계가 없으면 이런 오류는 반복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3년 방송 콘텐츠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드라마 산업의 해외 수출 규모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사극 장르는 그 중에서도 문화적 파급력이 큰 영역으로 분류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https://www.kocca.kr)). 이런 상황에서 역사 왜곡 논란은 단순히 국내 시청자 문제에 그치지 않고, 한국 역사 콘텐츠에 대한 해외 인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제작 현장이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도 방송 콘텐츠의 역사 표현 가이드라인 정비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https://www.mcst.go.kr)). 물론 드라마는 사실 기록물이 아니라 창작물이지만, 역사적 사실과 충돌하는 표현이 반복될 경우 시청자의 역사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드라마가 끝나도 논란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이번 '21세기 대군부인' 사태가 단순히 이 드라마 하나의 문제로 넘어가지 않고, 사극 제작 전반에서 고증 검토 시스템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시청자로서, 그리고 대본집을 찾아보기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는 이런 수정 공지를 다시 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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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m.entertain.naver.com/now/article/609/0001125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