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처음 '21세기 대군부인' 논란이 터졌을 때 그냥 드라마 실수 정도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장면을 살펴보니 단순 오류라고 보기에는 너무 반복적이고 구조적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이건 단순 제작 실수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국민동의청원까지 번진 상황을 보면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것 같습니다.

1.드라마 하나가 왜 이렇게 크게 번졌나
제작진이 사과까지 했는데 왜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는지 이해하려면, 무엇이 논란이 됐는지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핵심은 11화 이안대군(변우석)의 왕 즉위식 장면입니다. 신하들이 외친 호칭이 '만세'가 아닌 '천세'였고, 왕이 쓴 관이 십이면류관이 아닌 구류면류관이었습니다. 여기서 십이면류관이란 면류관의 앞 장식 구슬 줄이 열두 줄인 관으로, 자주 독립국의 황제가 착용하는 복식 규범을 의미합니다. 반면 구류면류관은 줄이 아홉 개로, 중국 황실에 속한 제후국의 왕이나 신하가 쓰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왜 중요하냐면, 조선은 공식적으로는 제후국의 예를 따랐지만 조선 초기 이후 각종 의례에서 자주성을 상징하는 복식을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세'와 '천세'도 단순한 숫자 차이가 아닙니다. 만세(萬歲)는 자주독립국의 군주에게 올리는 호칭이고, 천세(千歲)는 제후국이나 속국의 왕에게 쓰는 표현입니다. 드라마가 픽션이라도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등장하면 시청자들이 왜 문제를 제기하는지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논란이 된 핵심 장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즉위식 신하 발화: '만세' 대신 '천세' 사용
- 왕의 관: 자주국 상징 십이면류관 대신 구류면류관 착용
- 외래 문화의 무분별한 차용 및 국가 상징 복식 오류 반복 노출
제가 이 장면들을 직접 확인했을 때, 하나만 틀렸으면 실수라고 볼 수 있겠지만 두 가지가 같은 방향으로 어긋나 있다는 점이 석연치 않았습니다.
2.동북공정이라는 말이 왜 나왔나
청원인은 이 드라마에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동북공정이란 중국이 2002년부터 추진한 역사·문화 프로젝트로, 한국·만주·몽골 등 동북아 지역의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말합니다. 단순한 역사 연구가 아니라 문화 주권을 흐리는 전략적 작업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민감한 사안입니다.
저는 동북공정이라는 단어가 너무 쉽게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모든 역사 오류에 동북공정 딱지를 붙이는 것은 오히려 논점을 흐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조금 달리 봐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오류의 방향이 하필이면 조선의 자주성을 낮추고, 중국 문화권에 종속된 것처럼 읽힐 수 있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방송 내용이 공정성, 공공성, 사회적 해악 여부 등 기준에 따라 심의를 진행하는 독립 기구입니다. 청원인이 방심위에 즉각적인 방영 중단을 요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실제로 방심위는 과거 역사 왜곡이나 사실 오도 논란이 있는 방송에 대해 '주의' 또는 '경고' 제재를 내린 사례가 있습니다([출처: 방송통신심의위원회](https://www.kocsc.or.kr)).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OTT(Over-the-Top) 플랫폼 유통 문제입니다. OTT란 인터넷을 통해 방송 콘텐츠를 전 세계에 스트리밍하는 서비스로, 넷플릭스·왓챠 같은 플랫폼이 대표적입니다. 국내에서 논란이 되더라도 해외에서는 수정 없이 유통되는 경우가 생기고, 그게 왜곡된 한국 문화 이미지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이번 청원에서도 명확히 제기됐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해외 스트리밍이 시작된 상태에서 수정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면 사실상 왜곡된 버전이 먼저 퍼지는 셈입니다.
3.사과 이후에도 청원이 이어지는 이유
제작진, 박준화 감독, 유지원 작가, 주연 배우 아이유와 변우석까지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재방송과 VOD, OTT에서 해당 오디오와 자막을 수정하겠다고도 밝혔고, 팝업 스토어도 조기 종료했습니다. 절차상으로는 제작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대부분 이행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지난 22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드라마 폐기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오고 동의 수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사실은, 사과와 수정만으로는 여론이 납득하지 않는다는 신호입니다. 국민동의청원이란 일정 수의 국민이 동의하면 국회가 해당 사안을 공식 심사해야 하는 제도입니다. 이전에도 여러 사회적 이슈가 이 경로를 통해 공론화된 사례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청원 내용을 읽어보니, 단순히 방송 중단을 넘어서 정부 지원금 배제와 방송 허가권 제한까지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제작 실수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로 봐야 합니다. 한국 방송 산업이 글로벌 고증 역량(Historical Accuracy)을 얼마나 내부 검증 체계로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이번 사건으로 수면 위에 올라온 것입니다. 여기서 고증 역량이란 역사적 사실을 방송 제작에 반영하기 위한 전문적인 검토 및 자문 시스템을 뜻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은 국내 방송·콘텐츠 제작에 대한 지원 및 품질 관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역사·문화 고증 가이드라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https://www.kocca.kr)).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픽션이라는 방패는 창작의 자유를 위한 것이지, 역사적으로 민감한 상징을 잘못 사용해도 된다는 면허가 아닙니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모두가 고증 전문가는 아니지만, 반복적이고 일관된 방향의 오류는 결국 대중의 역사 인식에 영향을 줍니다. 제작 단계에서 전문 자문 인력을 의무적으로 배치하고, OTT 글로벌 배포 전 고증 최종 검토 절차를 거치는 방향으로 업계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대군부인'이 남긴 숙제는 이 드라마 하나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
참고: https://www.slist.kr/news/articleView.html?idxno=738476